퇴사 시그널- 번아웃증후군 테스트 자가진단, 극복방법

퇴사를 했다. 미련은 없다. 십년 넘게 의리로 만나온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처럼 오랜 시간동안 이별예행연습을 하며 울며 아파해서인지 막상 이별한 날은 아무 감정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왔다. 13년 넘는 시간동안 많은 추억이 쌓인만큼 애정도 많았던 곳이였는데. 이젠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떠나버리니 그동안 날 붙잡았던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게 되었다.

 

내겐 회사가 전부였다. 일이라기보다 좋아하는 걸 하는데 돈까지 주니까 행복하다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새벽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 어쩌다 10시쯤 귀가하면 일찍 들어왔단 소릴 들을 정도. 주말엔 부족했던 잠만 잔다고 눈뜨면 오후 4시.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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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스트레스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증상들

 

나 스스로 깨닫기 전에 내 몸이 먼저 무너졌다. 건강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 분주한 일상에 급브레이크를 걸어왔다. 아프니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단 걸 깨닫게 되니 무서워졌다. 좀 몸을 사리다가 다시 체력이 올라가니 또 원래대로 돌아갔다. 술 먹고나서 고생할 땐 다신 술 안 마신다며 결심하지만 회복하게 되면 젤 먼저 생각나는게 술인 것처럼.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

 

그 다음으로 정신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회사를 안가도 되는 주말을 기껏 기다렸는데 잠만 잔다고 하루가 다 가있었다. 내맘대로 눈이 안 떠지니 속상했다. 스스로를 원망했다. 다음 주말엔 알람을 여러개 맞춰두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막상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뭘 해야 알차게 시간을 보낼까 싶어 갈만한 곳과 할만한 것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보다가 1시간반 정도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시간을 줘도 뭘할지 모르는거지? 이런 시간이 많아봤어야 뭘할지 미리 생각해둘텐데.. 어느새 난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조급함과 허탈감에 젖어 펑펑 울었다.

 

회사에서 실수한 게 있으면 집에 와서 내내 그 순간을 곱씹었다. 내가 그때 왜 이렇게 말했을까? 왜 이렇게 대처했을까, 스스로를 꾸짖고 나무랬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날 못살게 굴었다. 그런 날들이 거듭되다보니 모든 문제가 다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회사에선 괜찮은 척 일을 계속 해나가야만 했다. 아무일도 아니라 쿨하게 넘겼지만, 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척 하는 순간들이 잦아지니 내 마음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더 외로워졌다.

 

그리고 또 다시 터져나오는 문제들. 나 스스로를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날 벼랑 끝에 세웠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것이 번아웃 증후군 증상이라는 것을.

 

 

번아웃 증후군 정의와 번아웃증구군 테스트 자가진단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걸 보게 되었다. 번아웃 증후군은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심적으로 피로감과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어, 저건 내 증상과도 비슷한데? 전문의들이 번아웃증후군 자가진단법을 알려줬다. 아래 10가지 항목 중 3가지 이상에 해당한다면 번아웃 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면서..

 

• 일을 하는데 정서적으로 지쳐있다
• 일을 마칠 때 완전히 지쳤다고 느낀다
•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하다
• 일하는데 부담감과 긴장감을 느낀다
• 업무를 수행할 때 무기력하고 싫증이 난다
• 업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 맡은 일을 하는데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 나의 직무 기여도에 냉소적이다
• 스트레스를 풀려고 폭식이나 음주, 흡연 등을 즐긴다
• 짜증과 불안이 늘고 여유가 없다

 

체크해보니 난 8가지 항목에 해당되었다. 그래,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내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전문의들이 말한 극복방법은..

 

- 업무 외 시간에는 일을 생각하지 않고

- 개인적인 삶과 일을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 휴식하고 운동하고 여가활동을 하면서 재충전하라는데.

 

그게 그리 쉽게 되었다면 이런 증상에 시달렸을리가 없잖아!!!

장담하건대,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면 뭔가 시도하려는 열정과 의지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이미 일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 태워버렸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걸.. 이게 바로 무기력의 늪이였다.

 

 

스스로 찾아낸 번아웃증후군 극복방법

 

 

전문의들이 제시한 극복방법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퇴사라는 카드를 쓰는 건 비겁해보였다. 그래서 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모든 걸 해결하려고 늦은 시간까지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 내일해도 큰일나지는 않아. 내일 하자." 하며 적당한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일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며 자존감을 낮추는게 아니라 "이건 누가 해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라며 문제의 원인을 내가 아닌 환경탓으로 돌렸다.

 

신기하게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니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난 번아웃증후군을 극복했다.

 

 

 

 

포스트 번아웃, 번아웃증후군 그 이후의 삶

 

 

하지만, 난 이미 번아웃증후군을 겪기 전의 내가 아니였다. 날 감싸고 있던 껍질이 바사삭 깨져버렸다랄까. 현재 상황에 적응하고 살기엔 문제 없었지만, 또 그런 익숙함에 젖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친듯이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아닌 그럭저럭 다닐만할 때 퇴사를 했다. 감정적인 상태에서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상태로 그만 둔다는 결정을 했다.

 

번아웃증후군의 극복이 끝이 아니라, 내겐 내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필요한 시기였다.

어쩌면 번아웃증후군 덕분에 잠시 멈춰설 수 있었다고 본다.

 

퇴사한 이후,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가 스스로 거울을 보며 발견하지 못한 나의 현재의 모습을 알려줬다. 늘 좀 짜증나있는 듯 날이 선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유로워진 거 같아서 보기 좋다며.

 

물론, 뭐 먹고 살아야 하냐는 영원한 고민에선 여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편해졌다.

앞으로 퇴사한 이후 달라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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